현장에서

문턱 없고 이동형 의자서 샴푸도···전국 최초 ‘장애인 친화 미용실’ 문 열었다

이성희 기자
서울 노원구가 4일 정식으로 문연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에는 각 헤어룸마다 염색과 커트를 하고 이동하지 않고 샴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샴푸대가 설치돼 있다. |노원구 제공

서울 노원구가 4일 정식으로 문연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에는 각 헤어룸마다 염색과 커트를 하고 이동하지 않고 샴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샴푸대가 설치돼 있다. |노원구 제공

미용실 의자는 대개 거울 앞에 고정돼 있다. 높낮이가 조절되기는 하지만 의자를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특히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미용실 의자로 옮겨 앉아야 한다. 염색·퍼머·커트 후 머리를 감으려면 휠체어로 다시 옮겨 앉아 이동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 샴푸대로 가야 한다. 장애인 중 상당수가 미용실에서 염색과 커트 등을 한 뒤 머리를 감지 않고 집에 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시설만 불편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의 머리 손질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들고 손도 많이 가다 보니 따가운 시선도 견뎌야 한다. 복지관 등에서 단순 커트 위주의 미용 봉사 서비스를 받는 것도 그래서다. 비장애인들은 기분 전환 겸 염색·퍼머 등을 한다지만, 장애인들에게는 크게 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미용실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복지관 등에서 제공하는 미용 서비스는 주로 단순 커트 위주로 이용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문을 연 장애인 친화 미용실 ‘헤어카페 더휴’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노원구 박미향 장애인친화도시팀장은 “장애가 있다고 미용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 미용실에 갔을 때 장애인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며 “장애인단체에 의견을 구했더니 ‘장애인 전용 미용실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들 하더라”라고 말했다. 미용실은 시범운영을 거쳐 4일 정식으로 문 열었다.

서울 노원구가 4일 정식으로 문을 연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 입구. |노원구 제공

서울 노원구가 4일 정식으로 문을 연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 입구. |노원구 제공

노원구가 조성하고 마들종합사회복지관이 운영하는 이 곳은 전국 최초의 장애인 친화 미용실이다. 박 팀장은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며 “머리를 하는 동안만이라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전용 미용실이라고 복지시설과 같은 분위기를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지난달 30일 찾은 미용실은 외관부터 여느 분위기 좋은 고급 미용실 못지않았다.

미용실 내부는 철저하게 ‘장애인 등 편의법’에 따라 맞춤 설계했다. 우선 입구에 문턱을 없앴으며 경사로를 설치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안전하게 들어설 수 있도록 경사로와 출입문까지의 이동 거리도 1.2m가량 확보했다.

시설과 장비도 장애인 편의에 초점을 뒀다. 일반 미용실의 경우 헤어룸이 개방돼 있지만, 이곳은 가벽으로 공간을 3개로 나눴다. 헤어룸 2곳에는 360도 회전하는 고정형 의자를 설치했으며, 나머지 1곳에는 휠체어에 앉아서도 서비스받는 손님을 위해 이동형 의자를 배치했다. 헤어룸마다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샴푸대가 달려있는데, 그 자리에서 샴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울 노원구가 문을 연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 내부에는 장애인 안전보호 장구가 설치돼있는 화장실이 마련돼 있다. |노원구 제공

서울 노원구가 문을 연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 내부에는 장애인 안전보호 장구가 설치돼있는 화장실이 마련돼 있다. |노원구 제공

서울 노원구가 문을 연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 한쪽에는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붙박이 침대가 설치돼 있는 탈의실이 조성돼 있다. |노원구 제공

서울 노원구가 문을 연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 한쪽에는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붙박이 침대가 설치돼 있는 탈의실이 조성돼 있다. |노원구 제공

서울 노원구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에서 근무하는 미용사 안혜영씨(사진 왼쪽)가 한 장애인과 머리 스타일과 관련해 상담하고 있다. |노원구 제공

서울 노원구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에서 근무하는 미용사 안혜영씨(사진 왼쪽)가 한 장애인과 머리 스타일과 관련해 상담하고 있다. |노원구 제공

지체장애 1급인 김지희씨(43)도 이날 생전 처음으로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의 활동보조인 이순형씨는 “집 앞 미용실에서는 짧게 커트만 하고 염색은 주로 집에서 내가 해준다”며 “머리는 목욕하면서 감는데, (여기서는) 스타일을 살려 드라이까지 해주니 너무 새롭다”고 말했다. 이씨가 “머리가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자 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용실에는 사회복지사 1명과 미용사 2명이 상주한다. 미용사는 25년 차 경력의 베테랑 실장과 3년 차로, 지난 6월 마들종합사회복지관 소속으로 공개 채용됐다. 이들은 채용 이후 꾸준히 장애인 유형과 특성 등에 대한 인식 교육을 받고 있다. 미용사 안혜영씨(34)는 “한 지적장애인 손님이 (입구에) 문턱이 없는 것을 보고 ‘미용실이라고 하면 내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미안하게 하는 곳이었는데,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장애인을 생각하는 마음은 미용실 곳곳에 묻어있다. 미용실 한쪽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마련돼 있다. 화장실 변기와 세면대 등에는 안전 보조기구가 각각 설치돼 있다. 반대편 공간에는 붙박이 침대가 설치된 탈의실도 있다. 뇌병변 중증장애인의 경우 기저귀를 교체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 옆에는 장애인들과 함께 움직이는 활동보조인들이 쉬거나 복지서비스를 상담받을 수 있도록 미니 카페가 조성돼 있으며, 장애인 전동보장구 급속 충전기도 설치돼 있다.

서울 노원구는 장애인들이 눈치보지 않고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4일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를 정식으로 문 열었다. |노원구 제공

서울 노원구는 장애인들이 눈치보지 않고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4일 장애인 친화 미용실 ‘더휴’를 정식으로 문 열었다. |노원구 제공

박 팀장은 “장애인 단체와 장애인 부모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해온 결과”라며 “바닥에서 60㎝ 높이인 미용실 의자는 초등학교 저학년도 앉을 수 있지만, 다리가 짧은 지체장애인들 중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더 낮출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용도 저렴하다. 커트 6900원, 퍼머 1만9000원, 염색 1만5900원, 열퍼머 3만9000원, 클리닉 2만2000원 등이다. 시중가보다 50% 이상 저렴한데,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대상자는 여기서 추가로 50% 할인된다. 이용대상은 노원구 등록 장애인이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장애인 친화 미용실은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면 하는 사업”이라며 “노원구는 서울 자치구 중 두 번째로 장애인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앞으로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 다양한 장애인 친화 사업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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